
History of Korean CRCs
북미주 개혁교회내 한인교회 공동체의 발전역사 (1969-2024)
글/ 윤원환 (아리조나 피닉스장로교회 담임. 프로비던스 대학교 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들어가면서>
우리가 사는 현시대를 “글로컬” 시대라고 부른다. 전 지구적 의미의 “글로벌”과 특정 지역의 의미인 “로컬”의 합성어이다. 현대 문명의 도움으로 이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단축된 여행속도와 정보유입의 신속성은 아득하게만 여겨졌던 지구촌을 이제 마치 하나의 마을속에 있는 것 처럼 여기며 살게 한다.
이 글은 대한민국을 떠나 전 세계 “디아스포라 한인 공동체”의 한 축인 미주지역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온 한인 개신교회권역중, 신학적으로 중도 보수적 경향의 “북미주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CRC)내 한인교회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간략한 역사보고이다. 이 글이 글로컬 시대 대한민국내 개신교회와 북미주 한인교회 공동체간의 상호이해와 교류진작에 지극히 작은 마중물이 되길 기대해 본다.
<초창기 CRC 한인교회 형성과 지도자들 (1969-1984)>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들의 조국을 떠나 어떤 동기에서든지 미주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연대는 1900년대로 소급되며 지금까지 크게 세번의 이민 물결을 통해서 미주내 한인공동체와 개신교회가 형성되어 발전되어 오고 있다. 첫번째 이민물결은1903년부터 1950년대 이전까지의 하와이 노동이민 물결이고 두번째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로서 주로 미군존속가족들과 유학생들 중심의 이민물결이며, 세번째는 1960년대 이후 “가족이민”의 물결로 불린다. 여기서 북미주 개혁교회내한인교회 공동체를 형성한 한인 이민자 그룹은 주로 세번 째 이민물결의 시기에 이주한 한인들이다.
CRC교단에 처음으로 가입한 한인 목사는 1967년 시카고에서 한인교회를 세운 이명재목사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보수적 장로교단에 속한 고려신학교 출신이며 고신교단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도미하였고 1969년에 CRC교단에 가입하였다. 그는 그 이후 20여년간 목회를 수행한 후 1992년에 은퇴하였으며 그의 후임은 김인환목사이다.
이명재 목사가 개척한 교회는 처음에 “한인 성경교회”로 불렸고 교단가입후 “시카고 한인 개혁교회”로 개명되었다. 그가 개혁교회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 신학적 입장의 일치와 함께 교단이 그에게 우호적으로 안내하고 협력해 준 것으로 술회했으며,교단가입은 “시카고 북부 노회”를 통해서 진행되었다.
시카고 한인 개혁교회를 이어 이 시기 교단에 가입한 한인교회들로는 1976년 나성 한인교회, 1977년 토론토 제일장로교회, 1978년 오렌지 한인교회, 1983년 피닉스 장로교회, 1983년 나성 한미교회, 그리고 1983년 산호세 뉴호프 교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기억할 교회로는 나성 한인교회와 토론토 제일장로교회인데, 나성 한인교회는 한국에서 고신대학의 전신인 칼빈대학에서 수학한 김의환목사가 세운 교회로서 개혁교단내 한인교회 초창기 시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교회이며, 토론토제일장로교회를 담임한 김용출목사 또한 한국 고신 장로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북미주에 도미한 목사로서 1984년에 결성되는 개혁교단내 한인교회 협의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한인 교회 협의회의 결성(1984-1993)>
1969년 시카고 한인 개혁교회의 교단가입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교단에 가입한 한인교회들은 1989년 당시42개 교회와 40여 목사로 집계되었다. 이 시기 교단에 가입한 한인교회들은 모두 한국어만을 구사하는 교회들로서 교단과의관계에서 오는 문화적 그리고 언어적 차이로 인하여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와같은 교단과의 소통의 원활성을 타개하기 위해 교단내 한인교회들은 1984년 7월 남가주 풀러턴시에 있는 오렌지 한인교회당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들이 모여 “북미주 개혁교회 한인 교회협의회”(Korean Council of CRCNA. KC)를 결성하였고 초대 회장에 토론토 제일장로교회의 김용출목사를 선출하였다. 그는 1978년에 교단에 가입하였고 한동안 교단내 회원목사로 활동하다가 재미 고신 장로교단이 결성(1986년) 되면서 불가피하게 CRC교단을 떠났으며 서울 남부교회에서 은퇴(2010년)한 후 현재는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한인교회 협의회 즉 KC는 1984년부터 동 협의회가 “한인목회자 협의회” (CRC Korean Ministers’ Association. KMA)로 변경 및 계승발전되는 2024년까지 40년간 해마다 총회를 열었고 교단내 한인 교회들과 지도자들에게서 나오는 여러가지제안들을 통합하고 그것을 교단 리더십과 소통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80-90년대 KC를 섬겼던 중요한 한인 지도자들은 본 교단을 가입하기 이전, 대부분 한국의 보수적 혹은 중도적 장로교단에서 신학 훈련을 받았으며 신앙고백으로는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충실했던 분들이다. 이들 중에서 한인 공동체와교단과의 관계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은 김의환박사이다. 그는 부산 칼빈대학을 졸업한 후 도미하여 칼빈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템플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총신대학교에서 잠시 강의한 후 다시도미하여 남가주에서 나성 한인교회를 개척하고 담임으로 섬기면서 본 교단에 가입하였다.
<한인교회 공동체와 교단 본부의 가교역할로서의 한인사역 조정관 제도(1984-현재)>
한인교회 협의회 즉 KC는 한인교회들의 성장과 한인 목회자들의 교단가입의 사안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교단에 한인 사역 조정관 (Korean Ministry Coordinator. KMC)을 세워 줄 것을 제안하였고 1984년 총회의 인준을 받아초대 한인 사역 조정관으로 김연택 목사가 선임되었다. 그이후 1988년 그가 화란 자유대학교로 박사학위 공부차 출국하게 됨으로, 총회는 그의 후임으로 최요한 목사를 2대 조정관으로 선임하였다. 최목사는 1998년까지 동 직분을 섬겼고, 그를 이어 박동건목사(1998-2014), 찰스 김목사 (2014- 2022), 그리고 크리스 최목사(2022-현재) 등이 대를 이어 한인 사역 조정관으로서 한인공동체와 교단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봉사해 왔다.
<교회내 여성직분자 안수문제와 교단 탈퇴(1993-1994)>
1990년 CRC 교단내 소속된 한인교회는 총 35개였으며 노회별로는 한인 교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남가주지역에 있는 두개의 미국노회인 California South 노회에 14개 교회, Greater Los Angeles 노회에 11개 교회, 그리고 기타 지역에 10개교회가 분포했다.
1991년 KC는 연례 총회를 열고 회원교회들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동 협의회안에 6개 지역 협의회를 구성하였는데 북가주, 남가주, 북중부, 북서부, 남중부, 그리고 플로리다 등으로 나누었다.
1990년대 들어 교단내에서는 교회내 여성직분자 안수문제가 교단적 차원에서 논쟁의 중심 주제가 되었고 이것은 한인교회들 가운데서도 논쟁적 사안이 되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 KC는 1991년 연차총회에서 1992년에 있을 교단 총회에서의 최종결정때까지 한인교회들은 단체적인 결정을 보류할 것에 동의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1993년 몇몇 한인교회들은 교단을 탈퇴하게 되었다.
1994년 CRC교단총회록에 의하면, 여성직분자 안수문제로 교단을 떠난 한인 목사들은 8인이며 이들이 섬긴 교회 교인수는 총 3,598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것은 이 당시 교단내 한인교회 교인들 총수의 40%에 육박한 것으로 산정되었으며 이때 교단 탈퇴과정의 가장 영향력있는 한인 목사는 바로 김의환 박사였다. 교단을 탈퇴한 한인목회자들과 교회는 “크리스천 장로교회. CPC”라는 교단을 결성하였고 나중에 미국 장로회(PCA)의 한인 남서노회가 되었다.
<한어 사용 노회의 결성: 태평양 한미노회 (1996-2014)>
1993년 교단을 떠난 일부 한인교회들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부분 교단내 잔류 한인목회자들과 교회는 그 당시 한인조정관 최요한목사와 한인사역 디렉터 김연택목사 그리고 한인교회 협의회 리더십팀을 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교단에대한 충성심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1984년 한인 교회협의회의 결성때 부터, 한인교회들과 지도자들은 교단내 한어사용 독립노회의 구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KC는 1987년에 노회와 총회에 제안서를 제출하였고 1996년 총회의 인준을 얻게 되었다. 1996년에 결성된 한어노회는 남가주 지역에 있는 벨플라워 제일 교회당에서 열렸고 회원교회들로는 조직교회 8개 교회, 미조직교회 3개교회 등 도합11개교회였으며 노회 명칭을 “태평양 한미노회”(Classis Pacific Hanmi. CPH)로 하였고 초대 노회서기(장로교의 교단총무와 같은 사무장 역할의 노회관장직분)에 정인열목사가 선임되었다. 그동안 네덜란드 계 백인 중심의 개혁 교단에서 소수 인종인 한인들만의 노회 결성은 1990년대부터 교단안에서 부상한 다양성 고양 운동의 결실로 여겨진다. 그 다양성은 여성과 소수 인종의 은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1995년 교단 총회의 승인으로 더욱 견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14년 두개의 한어노회로 분립되기 까지 18년간 태평양 한미노회 즉 CPH는 매년 2회 정기노회를 개최하였고, 지속적인 교단 헌법과 교회 운영교본에 대한 교육 훈련을 받았으며, 교단 총회가 요구한 교단내 사역부서에 대의원을 파송하는 것과 매년 총회에 대의원을 파송하는 것 그리고 교단 사역 분담금과 특별 구제헌금 등을 성실히 출연하는 일에 협조하였다.
1996년에 결성된 태평양 한미노회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역대 노회 서기들(정인열 양완전 김인철 윤종대 박형주 그리고 박장호 목사)과 한인사역 조정관(최요한 김연택 그리고 박동건목사) 들의 역할이 컸다고 할 것이다. 이와같이, 1996년의 한어 노회의 분립승인은 1993년 여성 직분자 안수문제로 한인교회들의 교단탈퇴가 있은 후 의기소침했던 한인 공동체의 사기를 진작하는 좋은 계기이기도 했고 그 이후 지속적 성장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1998년 KC는 60여 한인교회가 교단에 소속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65개 한인교회, 2003년에는 75개교회 그리고 2005년에는 91개 교회와 8,000명의 교인수가 집계된 것을 교단에 보고했다.
<태평양 한미노회의 분립: 쌍둥이 한인노회인 한미노회와 코암노회 결성(2014-현재)>
2014년 6월 교단 총회는, 2014년 2월 태평양 한미노회가 제안한 새로운 2개의 한어사용 노회의 분립을 재가하고, 2개노회의 분립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CPH 노회에서 분립된 “한미노회”는 2014년 9월 13개 교회로 첫 노회를 구성하였고 초대 노회 서기에 임바울목사(2014-2016)를 선임하였으며 그를 이어 문상면목사(2019-2022), 서오석목사(2022-2025) 등이 대를 이어 동 노회를 섬기고 있다.
한편 CPH노회에서 분립된 또다른 신생 노회인 “코암노회”는 2014년 9월 16개 교회와 20명의 노회대의원들이 로스 앤젤레스 시에 있는 예은장로교회당에서 모여 첫 노회를 구성하였고 초대 노회 서기에 최승창목사(2014-2016)를 선임하였으며그를 이어 임지석목사(2016-2019), 강남중목사(2019-2022), 그리고 윤원환목사(2022-현재) 등이 노회를 섬기고 있다.
2014년 태평양 한미노회에서 두 노회로 분립된 한미노회와 코암노회는 지난 10년간 해마다 교단 총회에 대의원을 파송하여 교단적 차원의 논의사항과 결정사항에 동참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중요한 총회적 결정에 공헌하였다. 가장 의미있는 총회참석과 결정은 2022년 6월에 있었던 동성연애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전통적 신앙고백서에 근거하여 반대를 천명한 것과2024년 6월 총회에서 있었던 동성연애문제에 찬동하는 회원교회와 노회에 대한 단호한 징계절차를 제정하는 일에 찬동한 것이 될 것이다. 해마다 있는 교단 총회의 결정은 본 교단의 방향성 제고의 중요한 권위와 능력을 보유하는 것으로서 앞으로도더욱 한인 양 노회의 적극적인 총회참석과 함께 언어차이를 불문하고 성경과 신앙고백에 근거한 올바른 발언을 개진하는 열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인교회협의회에서 한인 목회자 협의회로의 전환, 2024년>
1984년이래 2024년까지 40년간, 태평양 한미노회(1996-2014)를 거쳐 분립된 두 한어노회인 한미노회와 코암노회(2014-현재)와 병행하여 북미주 개혁교회내 한인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한인교회협의회(KC)는 그동안 여러모로 다양해진 한인공동체 구성원들, 예를들면, 기존 한어권 목회자들만 아니라, 영어권 교회를 섬기는 한인목회자들, 교단내 사역부서나 선교지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한인 목회자들, 그리고 영어를 주로 구사하는 이세 한인목회자들의 출현으로, 더욱 효율적인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하고 그것을 교단 지도부에 전달하는 소통의 창구를 위하여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그래서 2023년의 KC총회는 새로운 한인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포괄하고 새로운 기구 창설을 주도할 전환기적 기구로서“위대한 새로운 출발”(Great New Beginning. GNB)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이 기구를 담당할 회장으로 김문철목사를 선임하였다.
KC 기구의 38대 회장으로서 GNB의 총 책임자가 된 김문철목사는 재미 한인 이민교회를 30여년간 섬겼고 캘리포니아 주정부 교도소의 채플린으로 섬기고 있는데, 그의 재임기간(2023-2024) GNB기구안에 운영위원회를 두고 그동안 한인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 KC의 기본정신과 함께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기구의 성격을 담은 새로운 정관을 작성하기로하였다. 그리하여 GNB 운영위원회는 윤원환목사에게 정관 기초위원으로 선임하였고 운영위원회는 2024년 4월 시카고에서열린 KC 연례총회에서 새로운 정관을 심의하고 통과함으로써, 그동안 40년동안 교단내 한인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KC는 “한인목회자 협의회. Korean Ministers’ Association. KMA”로 변경 및 계승되었으며, 초대회장에 김은범 목사가 선임되었다.
2024년 4월 시카고 KC를 이어 KMA 기구를 태동시킨 CRC교단내 한인공동체는 새로운 정관에 수록된 단체목적처럼 기존 한어권 한인교회 목회자들만 아니라 본 교단내 사역부서에서 활동하는 한인목회자들, 영어권 한인목회자들, 그리고 기타특수기관에서 사역하는 한인 사역자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일 기구를 만듦으로써, 교단내 다양한 한인목회자들의 의견들을 취합하여 교단 리더십팀에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소통통로를 구축하게 되었다. 특히 KMA는 그동안 KC와 한인노회들이상호 소통이 부재한 채 평행구조로 무관심과 더구나 대립적 관계속에서 지내온 것을 감안하여 KMA안에 한인노회들의 대표인 노회서기들을 KMA 운영위원회원으로 포용함으로써 본 교단내 한인 공동체의 집약된 의견을 교단 헌법적 회의 기구인 노회를 통하여 총회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한인 공동체의 의견을 관철하는 헌법적 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6월에는 미시간 주 칼빈대학교 교정에서 10일간 교단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사무국에서 총회기간 한인공동체의역사와 KMA결성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요구해와 마침 코암노회 대의원으로 참석한 윤원환목사가 총회 오찬행사인“Synod Banquet”에서 1969년 이명재목사의 초대 교단가입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1984년 한인교회협의회의 결성, 1996년의 태평양 한미노회 성립, 2014년의 두 한어노회의 분립과 발전 그리고 2024년 KC를 대체하게 된 한인목회자 협의회인 KMA의 결성과정을 포함한 교단내 한인공동체 55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1984년이래 CRC교단내 한인교회와 목회자들의 교단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세워진 한인사역 조정관중에 2022년부터 현재까지 동 직분을 섬기고 있는 크리스 최목사는 2024년에 CRC교단내 모든 한인교회들과 목회자들의 명부와 연락처를 담은 <CRC한인교회 및 목회자 디렉터리>를 발간하였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2024년 현재 교단내 한인교회들은 120여 개 교회로 집계되었으며, 두개의 한어노회인 한미노회와 코암노회는 회원교회 수가 각각 21여 교회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이와같은 두 한어 노회에 속하지 않은 다른 한인교회들은 미국내 49개 노회에 각각 소속되어 있고 매년 교단 총회때 두 한어노회는 각각 4사람의 대의원을 파송하고 있으며 다른 영어권 노회에 속한 한인목회자들 또한 노회가 파송한 대의원으로 총회에 참석하여 중요한 교단적 결정사항에 한인공동체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요약하면 현재 CRC교단내 전체 교회수가1000여개 교회인 것을 감안하면 한인교회가 전체 교단내 교회중 10%를 점하는 것으로서 교단 리더십팀이 결코 무시할 수없는 교단내 소수인종 교회가 된 것을 의미하며, 이런 면에서 앞으로 교단내 한인공동체는 KMA를 중심으로 교단과 상호협력을 통해 미국교계에서 계속해서 복음적 교회운동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줄 안다.
현재 CRC교단은 대 전환기 상황속에 처하여있는데 그런 상황을 가장 최근에 앞당긴 사건은 2024년 교단 총회에서 동성연애문제에 대한 최종 전통적 신앙고백서에 근거한 반대천명으로 그동안 여러면에서 교단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몇몇 교회들이 교단 총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교단을 탈퇴한 일로 교인수만 아니라 재정적인 감소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이 일로 교단은 현재 여러 면에서 구조조정속에 있고 전통적으로 보전해 온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계속 보유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기존의 백인위주의 교단사역중심에서 미국내 그리고 해외의 다인종 교회들을 영입하는 일에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CRC교단은 초창기부터 백인이외의 타인종에 대한 선교와 교단적 교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는 바, 그 역사적 예는 미국내에 산재한 원주민들에 대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거기서 설립된 원주민 교회들을 교단내 회원교회로 받아들인 일, 미국내 소수인종들인 동남아시아계의 교회들을 영입한 일,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 지역에 교단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며 현지에서 세워진 교회들과 교단적 교제를 나누는 일들을 지난 150여년간 꾸준히 실천해 온 것이다.
21세기 들어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시대적 그리고 신앙적 위기는 한편으로는 더욱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보전할 것을 촉구하는 계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대로, 글로벌 차원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로 유입되는 예언이 성취될 절호의 기회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보편적 안목과 창조적 고안들을 통하여 다인종 선교의 비전을 이루어 갈 것을 촉구한다.
이런 선교적 비전의 성취를 위하여 CRC교단 그리고 교단내 한인교회 공동체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서로 협력하고 서로 축복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이 교회를 사랑하고 보존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