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and No: 사순절과 오늘날의 개혁주의 신앙 by 존 윗트블릿 교수
- CRC Communications
- Feb 19
- 4 min read
Updated: Mar 3
February 19, 2025 (originally published on February 11, 2011)

존 윗트블릿 John D. Witvliet 칼빈예배연구소 디렉터 칼빈신학교 예배학 교수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판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1),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빌 1:10)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이처럼 분별을 잘 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부활절을 준비하는 40일(일요일 제외) 기간인 사순절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최근에 해온 방식
오늘날 북미주 개혁교회의 많은 회중들이 사순절을 지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교도들에게 이 방식은 다소 생소한 듯하다. 이는 1933년 <배너>에 실린 H.J. 카이퍼 편집장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사순절을 지키려는 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을 묘사하며 “두 가지 견해 모두 일면적이다one-sided.”라고 결론지었다.
카이퍼는 사순절에 금식과 같은 영적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는 고대 사순절 관념에 “No”라고 말했다. 카이퍼가 주장했듯 “사순절 동안 경건함에 힘쓴다면, 이후에는 나태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고전 15:58)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순절 의무가 자칫 율법주의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동시에 카이퍼는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Yes”라고 말하며, 사순절을 지키는 적합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설교를 꼽았다.
지난 3세대 동안, 북미주 개혁교회 회중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설교 시리즈에 대체로 호의적이었으나, 금식과 기도를 포함한 영적 훈련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또한, 마디 그라 축제(역주: Mardi Gras Party는 프랑스어로 기름진 화요일을 뜻하며,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 음식과 술을 마음껏 즐기며 축하하는 축제를 말한다), 금요일에 생선 먹기, 사순절 예배에서 “할렐루야”라는 단어 생략하기(부활절 아침까지) 등과 같은 전통에 대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예로 1987년 CRC 찬송가 Psalter Hymnal 의 사순절 섹션이 거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만 초점을 맞춘 것을 들 수 있겠다.
4세기의 혁신
당시 역사적 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카이퍼는 사순절의 또 다른 차원, 즉 사순절과 세례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사순절은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동시대의 문화적 도전에 비추어 사역 관행에 대해 "Yes", 해야 할 것과 "No",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로마 시민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해졌고 심지어 장려되었다. 성인 세례가 갑작스럽게 증가하면서 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진지한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을까? 또한, 교회는 이러한 새 신자들의 삶을 형성해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을까? 단순히 세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새로운 신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기 위한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교회는 세례 준비를 위한 40일 과정—성경 공부, 교리 공부(그렇다. 이는 존 칼빈보다 1,200년 앞선 교리 공부였다), 기도와 금식을 포함한 영적 훈련—을 개발했다. 이는 "40일간의 영적 모험" 또는 "목적이 있는 40일"로 둘 다 고대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신자들은 자신의 세례를 준비하거나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을 격려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에 초점을 맞추는 시기가 되었다. 로마서 6:3-4가 주제 성구로 사용되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교리적으로 이 시기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칭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새 생명의 선물(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사순절은 새 신자와 기존 신자 모두가 기독교인의 삶의 기본적인 행동을 "실천"하도록 돕는 시간이었다. 자기 부인, 예수님께로 돌이킴, 험담과 악을 버리는 것을 배우고, 인내와 연민을 실천하도록 권장되었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핵심 기술을 연습하고 음악가들이 스케일을 연습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사순절은 지금 우리가 “선교적 상황”이라고 부르는 배경에서 발전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 우리 시대와 매우 유사한 시기에 일어난 목회적 혁신이었다. 제자도 없는 세례를 추구하는 값싼 은혜에 대해서는 “No”, 구원의 자유로운 선물에 대해서는 “Yes”라고 교회의 방식으로 말한 것이 바로 사순절이었다.
16세기의 개혁
존 칼빈이 등장할 무렵, 사순절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절기라는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성인 세례는 드물어졌고, 거의 모든 사람이 유아 세례를 받았다. 사순절 제자훈련은 여전히 행해졌지만, 교회가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려는 수단으로 곡해하여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칼빈은 교리문답을 중심으로 한 가르침 등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관행에 대해서는 “Yes”, 찬성했다. 그러나 사순절은 너무 절망적인 미신이라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No”, 반대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엇이 최선일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사순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우리는 4세기의 목회자들과 존 칼빈, H.J. 카이퍼, 그리고 같은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오늘날 많은 사려 깊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과 함께, 신실한 제자도를 증진시키는 쪽으로 현명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각 목회 현장에서 직면한 특정 도전에 대해 여러분 역시 "Yes"와 "No" 둘 다 말해야 할 것이다.
사순절의 관행이 율법주의나 미신과 직결되는 지역이라면, 칼빈의 예를 따라 사순절을 "No", 거부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목회자가 회중을 이끌어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른 맥락에서는 사순절을 부활절을 준비하는 절기로 구별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달력을 성화하고 겨울과 봄철의 행사들—발렌타인 데이, 봄방학, 미국 대학 농구 토너먼트March Madness, 심지어 하키 플레이오프조차도—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큼 우리 정체성에 중요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많은 성인 세례가 부활절에 이뤄지기를 바라는 선교적 환경에서는, 사순절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뿐만 아니라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으로 한다는 아이디어를 회복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기도, 금식, 회개의 훈련을 의도적으로 실천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사순절이 끝난 후에도 계속 실천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결국 많은 문화권에서 이러한 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때로 우리는 신앙의 조상들로부터 핵심 질문에 대한 이미 확립된 답을 물려받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 자체를 물려받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에 지표를 달고 기념하는 방식에 있어 어떻게 예수님을 중심에 둘 수 있을까? 세례를 통해 형성된 신앙적 정체성에 대한 아름다움을 구도자들에게는 어떻게 전달하고, 신앙의 연수가 있는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기독교인의 삶에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어떻게 그 훈련 자체를 신뢰하거나 자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빌 1:10)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토론 주제
사순절 하면 어떤 예배가 떠오르나요? 사순절은 다른 절기 예배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사순절 동안 금식이나 어떤 것을 포기하는 등의 영적 훈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적 사랑이 세례 준비나 세례를 기억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사순절을 부활절 준비를 위한 구별된 절기로 "채택"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일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시간을 구분하고 기념하는 방식에 있어 예수님을 중심에 두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참고: 이 글은 The Banner, 2011년 2월 18일 자에 실렸습니다.
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