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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마주한 '한인목회자들'

Updated: 1 day ago


July 25, 2025

제이크 정 목사의 안수식에서 정 목사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는 Ideal Park CRC 성도들
제이크 정 목사의 안수식에서 정 목사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는 Ideal Park CRC 성도들

수년 전, 빅터 고Victor Ko 목사는 미시간 주 칼라마주에 있는 Third CRC 교회 역사기념실에 앉아 있었다. 


금테로 두른 액자 속에 담긴 역대 목회자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대부분 네덜란드계로,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채 다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 목사가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면접관 중 한 명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이렇게 물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Third CRC 인데, 당신과 같은 이름과 얼굴로 우리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십니까?” 


이 질문에 고 목사는 난처해졌다. 서울에서 태어나 칼빈신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 생각에 그 문제는 제가 아니라 여러분들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묻고 싶은 질문은, ‘Third CRC가 저 같은 목사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아닐까요?” 


1999년에 있었던 일이다. 어려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질문 덕분에 고 목사는 청빙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CRC 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고 목사는 요즘 더 많은 한인 동역자들이 교단에서 리더십 역할을 맡는 모습을 보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Third CRC에 채용될 때, 진정한 장애물은 그의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Third CRC에서 8년간 섬긴 후, 캐나다 알버타 주에서 MosiacHouse라는 다인종 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제가 CRC 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 저의 인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고 목사는 말했다.  



정착할 교회를 찾아서

고 목사는 지난 2월 24-27일, 처음으로 열린 CRC 영어권 한인 목회자 모임에서 이 간증을 나눴다. 


이 모임의 목적은 그동안 북미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한인목회자들이 점점 더 많은 교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 변화를 함께 기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칼빈신학교를 졸업한 한인들이 여전히 네덜란드계 교인이 중심인 CRC 전통교회에서 사역 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 


현재 교단 내 말씀사역자 1,135명 중 215명이 한국계이며, 이 중 53명이 영어권이다. 이들은 다양한 사역을 섬기고 있다.  


빅터 고 목사는 이 모임에서 많은 참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모든 한인목회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교단 내 주류 교회에서 사역지를 찾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영어권 한인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이 그런 교회에서 청빙 받는 데는 여전히 여러 장애물이 존재한다. 


다음 이야기들 가운데 이런 어려움 중 일부를 살펴 보려고 한다. 또한 영어권 한인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섭리 위에 그들의 재능과 믿음이 더해져, 점진적으로 CRC 리더십의 자리로 나아가며, 교단 내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함께 조명할 것이다. 



개척자를 기념하며

미국 동부의 비교적 전통적인 CRC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임스 이James Lee 목사와 강모세Moses Kang 목사는, 자신들이 그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길을 닦아준 故 앤디 전Andy Chun 목사의 헌신 덕분이라며 그에게 공을 돌렸다. 


전 목사는 빅터 고 목사와 함께, CRC 전통교회를 이끈 영어권 한인목회자 1세대 중 한 명이었다. 


2009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소천하기 전, 전 목사는 뉴저지 노스해일던에 위치한 Covenant CRC에서 사역했다. 그는 2001년 이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도 이미 세 곳의 교회에서 사역한 경험이 있었다. 이 목사는 전 목사가 교회의 여러 어려운 사안들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지역 사회는 물론 교단 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소천한 후, 교단 매거진 <배너>는 그를 “친절하고 재능 있는 한인목회자, 리더십있는 교계 지도자, 가난한 자들의 챔피언,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묘사했다. 


2018년 칼빈신학교 졸업한 후 뉴욕 이스트아이슬립에 위치한 Christ Community Church의 담임 목사로 부임한 제임스 이 목사는 앤디 전 목사를 이렇게 회상했다. “앤디 목사님은 동부지역의 문을 여신 분입니다. 한인목회자들이 커넥션을 쌓도록 도와주시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셨죠.” 


캐나다 온타리오 주 베리에 있는 CRC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2024년부터 뉴저지 와이코프에 위치한 Faith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강모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빅터 고 목사님과 앤디 전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훌륭한 사역을 통해, 한인목회자를 청빙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전 목사님이 아니었더라면, 동부 지역 교회들은 한인목회자를 청빙하는 것을 망설였을지도 모릅니다. 한인이라는 민족적 배경이 교회와 잘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전 목사님은 이 지역에서 그런 방식으로 사역한 첫 번째 한인이셨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사역 덕분에 다른 교회들도 한인목회자들이 지닌 가치를 보게 되었고, 저희가 사역의 기회를 얻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한인목회자들은  어려움 중 하나는 세대간 갈등이라고 한다. 수십년 전, 한인목회자들이 CRC교단에 처음 가입했을 때는 대부분 1세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초창기 CRC 교회들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했듯, 이들은 한국어를 사용했다. 이들의 사역 대상은 대부분 북미주로 새로 이민온 한인들이었다.  


그리고 1.5세로 불리는 한인목회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이민온 세대로, 한국어와 영어 모두 익숙하다. 또한 제임스 이 목사처럼 북미에서 태어나 주로 영어로 소통하는 2세 한인목회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 리더십을 지닌 1.5세 목회자

김형준 목사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버나비에 있는 New Westminster CRC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는 1.5세 목회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10대 후반까지 살다가, 가족과 함께 브리티시 콜럼비아로 이민했다.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한 후, 김 목사는 리젠트칼리지, 라이덴대학교, 그리고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5년 New Westminster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는 한 한인 장로교회를 섬겼다. 


New Westminster 교회는 10년 전, 사택을 근처 대학의 유학생들을 위한 센터로 전환하고, 이 사역을 위해 김 목사를 청빙했다. 이후 그는 다문화 리더십 및 제자훈련 담당 목사로 사역하면서, 교회 인근에 증가하는 한인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2020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오랜 멘토이자 담임목사인 Andrew Beunk 목사 아래에서 부목사로 섬기게 되었다. 


“저는 이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한인 성도들만을 위한 목사가 아니라, 교회 전체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제 생각에는 한인목회자가 (한인교회가 아닌) CRC 교회에서 사역하는 일이 아직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김 목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한인목회자들은 교회에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실력있고, 성실하며, 특히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더 큰 영어권 교회에서 사역하길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추세 

한인목회자들이 전통적인 CRC 교회에서 사역 자리를 찾는 일이 때로 기회의 문이 열리기도 했지만, 종종 성과 없이 이어지는 어려운 여정이 되기도 했다.


2015년, 다니엘 정Daniel Jung 목사는 칼빈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족과 함께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계속 머물기를 원했다. 그 도시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다. 2년 동안 그는 서부 미시간 지역의 여러 교회에 수십 통의 지원서와 이력서를 보냈지만, 좀처럼 긍정적인 응답을 받지 못했다. 


“전화 면접을 보다가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수화기 너머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2년 동안 직접 만나서 면접을 본건 두 번 뿐이었고, 결국엔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자란 정 목사가 말했다. 


한 번은 교회 리더십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근처 라오스 교회에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CRC 전통교회에서, 특히 서부 미시간에서는 한인목사들을 지원할 인프라가 없었어요. 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제가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이 계속 따라다녔어요. 


정 목사는 결국 캘리포니아의 스탁톤반석장로교회라는 한인교회로 가게 되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Home of Christ라는 아시아계 미국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칼빈신학교 Jul Medenblik 총장은 지난 몇 년간 한인학생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현재 총 300명의 학생 중 1/6이 한국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지금 한인 신학생들이 CRC 안에서 사역을 탐색하는 것이 추세입니요. 그리고 교회들이 다른 문화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한인목회자들도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고 교회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하고 있습니다.”



진심어린 사과

기존 백인 교회들이 한인목회자 청빙을 꺼리는 것은 여러 어려움 중 일부이다. 김문배 목사는 세대간 도전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올랜도에서 열린 영어권 한인목회자 모임에 참석한 김문배 목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1세 한인목회자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기사와의 인터뷰에서 김 목사는, 많은 1세대 목회자들이 가부장적인 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 그들 뒤를 잇는 다음 세대 한인목회자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거나 충분히 지원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1세 목회자로서, 저희는 젊은 목회자들을 내려다보거나 아이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권위적인 태도를 취했고, 그들에게 마땅한 존중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김 목사는 오랫동안 그랜드래피즈 한인은혜교회를 담임해 오고 있다.  


올랜도에서 열린 이번 모임을 공동 주도한 제임스 이 목사는,

“김 목사님의 말은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이제는 (어쩌면 이미 한참 전에) 젊은 한인 목회자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더 넓은 교회 안에서 사역 자리를 찾도록 도와야 할 때임을 일깨워주는 말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김문배 목사는 자신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칼빈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인 학생들을 멘토링하고, 칼빈신학교 진학을 결정한 학생들과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세 목회자들이 젊은 한인목회자들과 협력하고, 교회와 교인들에게 그들을 적극 추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싱가폴에서 자라, 현재 칼빈신학교에 재학 중인 구교찬 학생도 김 목사가 함께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아직도 배워가고,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이 문화권에서 김문배 목사님은 대학 시절부터 지금의 신학교 생활까지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구교찬 학생은 현재 그랜드래피즈에 있는 Living Water CRC에서 목회 인턴으로 사역 중이다. 그는 김문배 목사가 곁에서 함께하며 목회자로서의 기본기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김 목사님은 목회 상황이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그 배경이 되는 역사부터 살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견고한 신학적·성경적 지식은 최소한의 기본이라고 항상 말씀하세요.”


기본적인 신학을 익힌 뒤, 구교찬 학생은 김 목사에게서 목회자가 그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진짜 열쇠는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성도들을 사랑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하는 마음이 핵심입니다.”



Ideal Park CRC의 담임목사가 되기까지

제이크 정Jake Jeong 목사의 이야기는 한인목회자가 CRC 주류 교회의 리더가 되기까지 겪는 우여곡절, 시행착오, 고된 여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기쁨과 보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여정은 많은 한인목회 후보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전과 희망을 함께 담고 있다.


현재 제이크 정 목사는 조용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그랜드래피즈 지역에서 네덜란드계 전통을 가진 주류 CRC 교회를 담임하게 된 첫 한인목회자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올해 초, 그랜드래피즈 교외 도시 와이오밍에 위치한 작은 교회인 Ideal Park CRC의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제이크 정 목사는 칼빈신학교를 졸합한 한 대학교 교수의 추천으로 칼빈신학교 진학을 결심했고, 약 7년 전 이를 위해 미국에 왔다. 


하지만 제이크 정 목사는 칼빈신학교에서의 유학 생활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한국인 유학생으로서, 이미 형성된 네덜란드계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진심 어린 지원이 있긴 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간헐적이었어요.”


졸업 후 제이크 정 목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뚜렷한 방향이 없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목회하고 설교하는 사역을 원했지만,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고, 대신 병원 원목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일자리를 떠났고, 이후 한동안 교회 사역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저에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미시간 홀랜드 근처에 있는 Graafschap CRC였고, 그곳에서 저는 음악 및 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는 예배 디렉터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Graafschap CRC는 1857년 RCA 교단에서 분리되어 나온, CRC 교단 초창기 교회들 중 하나다. 정 목사는 이 역사 깊은 교회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저를 언어, 관계, 문화, 사역 등 여러 면에서 전인적으로 준비시키셨고, CRC의 안에서 제 소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회중 중심의 사역 현장에서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통해, 제 부르심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Graafschap에서의 사역이 즐거웠지만, 정 목사는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싶다는 갈망이 점점 커졌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그랜드래피즈 지역에 계속 머물고 싶었던 그는,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임목회직을 찾기 시작했다.


“CRC 웹사이트를 통해 사역 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랜드래피즈 지역의 몇몇 교회에 지원했는데, 마침내 Ideal Park 교회가 저에게 담임 목회직을 제안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이 시간은 실망과 희망이 뒤섞인 긴 여정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되어, 저는 기꺼이 Ideal Park 교회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라고 정 목사는 말했다.


마침내 CRC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된 정 목사는, 이제 Ideal Park 교회 교인들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말씀을 전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 목사에게는 “젊은 영어권 한인목회자로서 서부 미시간의 전통적인 교회를 담임하게 된 첫 사례”라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정 목사가 말하는 진짜 중요한 것은, 빅터 고 목사가 Third CRC에서 첫 사역을 시작할 때 언급했던 바로 그 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것이 제가 계속해서 찾아왔고, 지금도 따르고 있는 길입니다.”


Chris Meehan

CRC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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